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엠마 해밀턴 (문단 편집) === 윌리엄 해밀턴 경의 부인이 되다 === 윌리엄 해밀턴 경은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상관으로 유명한 인물이였다. 사실 실질적인 지휘는 넬슨에게 모두 맡기고 자신은 바지사장이나 하면서 넬슨에게 작전자유를 보장해주었던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는 육군 장교로 참전했었고 복무 이후 [[나폴리]] 대사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아내 캐서린 해밀턴(Catherine Hamilton)과는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금슬 좋은 관계였다. 두 사람은 열과 성을 다해서 서로를 사랑하며 사이가 좋았다고 하는데, 결혼 생활 22년만인 1782년에 부인 캐서린이 병으로 먼저 사망해 버린다. 아내와 사별하고 고향도 아닌 머나먼 나폴리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던 윌리엄 해밀턴 경은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와의 사이에서 자식도 없었기에 더욱 외로워했다. 이렇게 아내가 죽은 후 4년 동안 심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던 윌리엄 경은 55세가 된 어느날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런던에 들리게 된다. 런던으로 잠시 돌아온 윌리엄 경은 위에서 서술된 자기 누나의 아들인 조카 찰스 그레빌을 상속자로 선정한다. 그러나 그레빌은 자신을 상속자로 선정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고향 영국으로 돌아온 외삼촌에게 자신의 방탕한 삶을 정리하고, 부잣집 상속녀와 결혼하기 위해 엠마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해밀턴 경에게 엠마는 내가 예의범절도 다 가르친데다 내가 부잣집 딸래미랑 결혼만 하면 바로 다시 데리러 올거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면서 말이다. 당시 엠마는 젊은 상류층 신사가 데리고 있던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는데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지 않았고 무슨 상황인지 굳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도 빤히 보였지만, 이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었던 윌리엄 해밀턴 경은 조카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엠마를 데려오기로 한다. 1786년 4월 26일에 엠마는 21살 생일날에 어머니와 함께 나폴리에 있는 윌리엄 해밀턴 경의 저택에 도착한다. 윌리엄 경은 거진 자신의 딸뻘이었던 엠마가 안쓰러웠던지 개인교사를 고용해 엠마에게 이탈리아어와 노래를 가르친다. 당시 젠트리 여자들이 배우던 대표적인 것들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정말 딸처럼 대했던 셈이다. 그레빌은 엠마를 맡기면서 "다시 데리러 올게!"라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엠마는 그레빌이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잘 대해주던 해밀턴 경의 정부(Mistress)가 되기로 한다. 그렇게 5년 후인 1791년에 61세의 윌리엄 해밀턴 경은 국왕의 허락을 받아 26세의 엠마와 결혼한다. 젊은 시절 국가를 위해 군복무도 했고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한 노귀족이 인생 말년에 행복을 찾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없었다. 신분도 명성도 나이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관계임에도 결혼 허락을 받은 윌리엄 해밀턴 경과 엠마는 런던의 한 작은 교회에서 조용히 식을 올린다. 한편 엠마를 떠넘긴 1786년부터 5년간 아무 소식도 없었던 찰스 크레빌은 엠마가 "레이디 해밀턴"이 되자 다시 나타난다. 그레빌은 엠마를 받아들인 후 엠마의 사생아(Emma Carew)의 양육비도 자신이 부담하고 있었는데, 외삼촌이 엠마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양육비를 윌리엄 해밀턴 경에게 떠넘긴다. 당시 엠마의 사생아는 어느 학교의 교장 부부가 키우고 있었는데, 그레빌은 윌리엄 해밀턴에게 '이제 이 아이도 외삼촌의 양녀니까 외삼촌 저택으로 데려가는게 어때요?' 라고 했다. 이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윌리엄 해밀턴 경은 양육비는 떠맡았지만 엠마의 사생아를 나폴리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오지는 않았다. 감이 왔겠지만 윌리엄 해밀턴 경도 소설 속 주인공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엠마의 사생아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화두를 돌리거나 모르는 척을 했다. 또한 평민인 엠마를 같은 젠트리 계급처럼 대하며 정실부인으로 받아들이고 "해밀턴 부인"의 명칭을 주었지만, 잠시 데리고 있을 목적으로 20대의 젊은 엠마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당시 50대였던 윌리엄 해밀턴 경이었다. 해밀턴 경의 입장에선 엠마는 사랑했지만 사회적으로 존재 자체가 껄끄러운 엠마의 사생아조차 사랑하지는 못했던 모양. 어쨌거나 엠마의 사생아는 이후에 평민으로 사무직 비서나 하며 살아서였는지, 돈 좀 있으면 개나소나 그려서 남긴다는 초상화 한장도 없다. 더군다나 사실 윌리엄 해밀턴 경이 보호하고자 했던 대상은 엠마가 아니라 조카였던 찰스 그레빌이였다. 결혼 당시 엠마는 26세였고 해밀턴 경은 60세(...)였으며, 위에서도 언급했다싶이 평생 해로했던 부인과 사별한 이후였다. 누가 봐도 조카의 추문을 덮기 위한 정략결혼이었으며 불순한 목적으로 엠마를 떠안은만큼, 해밀턴 경도 명색에 자신의 아내인 엠마에게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후일 엠마가 넬슨과 바람을 피우든 말든 무관심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윌리엄 해밀턴 경은 엠마를 정실부인으로 받아들이고 열과 성을 다해 그녀를 지원했다. 나폴리 대사로서 각종 행사에 데리고 다니며 당당하게 엠마를 자신의 부인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는데, 당대 영국 최고의 미인으로 유명했던 엠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들은 엄청났다. 여러 사교 행사에 다니면서 곧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엠마는 사교계의 스타가 되었는데, [[나폴리 왕국]]의 왕비였던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의 10번째 딸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와도 매우 친해졌으며 예술가, 가수로 여러 파티와 공연에 출연하며 더욱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대표작으로는 "Attitude"가 있는데 이것도 나체로 춤추는 꽤나 외설스러운 공연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당시 엠마와 만났던 사람의 일기에서도 그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엠마에 대해 "친절하고 자상하며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다"라고 묘사한다.(Elizabeth Wynne)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